어린이날의 유래
지전힘내라힘
2시간 18분전
5
0
- - 짧은주소 : http://www.gotoworld.kr/bbs/?t=CY
본문
♡ 어린이날의 유래 (펌)
‘어린이’라는 말은 1920년대 들어 방정환이 정착시키면서 널리 쓰이기 시작했다.
방정환은 아동문학가로서 우리나라 첫 아동 잡지 『어린이』를 발간하고 어린이 단체도 만들었다.
동화를 재미있게 들려주는 것으로도 유명해서 지방마다 돌아다니며 어린이들에게 동화를 들려주었다.
방정환이 생각한 ‘어린이’는 티 없이 맑고 순수하며 마음껏 뛰놀고 걱정 없이 지내는 그런 모습이었다.
그런데 불행히도 우리나라는 일제에 나라를 빼앗기고 암울한 삶을 살아가던 시기였다.
그때 어린이들의 실제 모습은 방정환이 생각한 것과 많이 달랐다.
그때에는 의무교육이 시행되지도 않았고 교육을 받는 어린이도 많지 많았다.
대개의 어린이들은 농사일을 하거나 도시로 나가 공장에서 일을 했다.
비록 현실이 가혹할지라도 어린이들에게 꿈을 심어주기 위해 "어린이날"이 만들어 졌다.
<취지>
젊은이나 늙은이는 일의 희망이 없다. 우리는 오직 나머지 힘을 다하여 가련한 우리 후생 되는 어린이에게 희망을 주고 생명의 길을 열어주자.
<소년운동의 기초 조건>
1. 어린이를 재래의 윤리적 압박으로부터 해방하여 그들에게 대한 완전한 인격적 예우를 허하게 하라.
2. 어린이를 재래의 경제적 압박으로부터 해방하여 만 14세 이하의 그들에게 대한 무상 또는 유상의 노동을 폐하게 하라.
3. 어린이 그들이 고요히 배우고 즐거이 놀기에 족한 각양의 가정 또는 사회적 시설을 행하게 하라.
(정인섭, 『색동회 어린이 운동사』, 휘문출판사, 1981, 53쪽)
이 선언문은 장유유서에 찌든 옛 질서와 어린이 노동으로 대표되는 압박을 없애고 배우고 놀 수 있는 권리를 주장하고 있다.
사실 이 선언문은 인권선언과 비슷해 그만큼 어린이 운동은 일제 강점기 다른 사회운동과 마찬가지로 뚜렷한 목표를 갖고 있었다.
곧 어린이를 깨우치고 그들에게 권리를 부여해서 미래를 이끌 주체로서 길러내는 일이 식민지시대 어린이 운동의 가장 중요한 목표였다.
어린이날은 ‘새싹이 돋아난다’는 의미로 새싹이 돋아나는 5월 1일로 정해 1923년 처음으로 기념행사를 했다.
1927년부터는 5월 첫 번째 일요일로 날짜를 바꾸어 치렀다.
어린이날이 해가 갈수록 규모가 커지자 일제는 행사를 금지시켰다.
어린이들이 참가하지 못하도록 일요일에도 학교에서는 수업을 했다.
해방 뒤 첫 어린이날 기념식은 1946년
5월 5일 오전 11시부터 휘문중학교 교정에서 어린이날 전국준비위원회와 어린이날 서울시준비위원회 공동 주최로 거행됐다.
일제강점기에는 ‘어린이날’ 알리기, 어린이도 인격을 갖고 있음을 알리는 데 힘썼다.
해방 뒤에는 어린이들이 참가하여 희망이나 포부 따위를 말하고, 모범 어린이를 표창하거나 음악 · 무용 · 사생 · 백일장 같은 대회를 열었다.
해방 뒤 첫 어린이날인 1946년 첫 번째 일요일이 5일이어서 그 뒤부터는 요일에 관계없이 5월 5일을 어린이날로 정한 것이 오늘 제104회 어린이날을 맞이하였다.
‘어린이’라는 말은 1920년대 들어 방정환이 정착시키면서 널리 쓰이기 시작했다.
방정환은 아동문학가로서 우리나라 첫 아동 잡지 『어린이』를 발간하고 어린이 단체도 만들었다.
동화를 재미있게 들려주는 것으로도 유명해서 지방마다 돌아다니며 어린이들에게 동화를 들려주었다.
방정환이 생각한 ‘어린이’는 티 없이 맑고 순수하며 마음껏 뛰놀고 걱정 없이 지내는 그런 모습이었다.
그런데 불행히도 우리나라는 일제에 나라를 빼앗기고 암울한 삶을 살아가던 시기였다.
그때 어린이들의 실제 모습은 방정환이 생각한 것과 많이 달랐다.
그때에는 의무교육이 시행되지도 않았고 교육을 받는 어린이도 많지 많았다.
대개의 어린이들은 농사일을 하거나 도시로 나가 공장에서 일을 했다.
비록 현실이 가혹할지라도 어린이들에게 꿈을 심어주기 위해 "어린이날"이 만들어 졌다.
<취지>
젊은이나 늙은이는 일의 희망이 없다. 우리는 오직 나머지 힘을 다하여 가련한 우리 후생 되는 어린이에게 희망을 주고 생명의 길을 열어주자.
<소년운동의 기초 조건>
1. 어린이를 재래의 윤리적 압박으로부터 해방하여 그들에게 대한 완전한 인격적 예우를 허하게 하라.
2. 어린이를 재래의 경제적 압박으로부터 해방하여 만 14세 이하의 그들에게 대한 무상 또는 유상의 노동을 폐하게 하라.
3. 어린이 그들이 고요히 배우고 즐거이 놀기에 족한 각양의 가정 또는 사회적 시설을 행하게 하라.
(정인섭, 『색동회 어린이 운동사』, 휘문출판사, 1981, 53쪽)
이 선언문은 장유유서에 찌든 옛 질서와 어린이 노동으로 대표되는 압박을 없애고 배우고 놀 수 있는 권리를 주장하고 있다.
사실 이 선언문은 인권선언과 비슷해 그만큼 어린이 운동은 일제 강점기 다른 사회운동과 마찬가지로 뚜렷한 목표를 갖고 있었다.
곧 어린이를 깨우치고 그들에게 권리를 부여해서 미래를 이끌 주체로서 길러내는 일이 식민지시대 어린이 운동의 가장 중요한 목표였다.
어린이날은 ‘새싹이 돋아난다’는 의미로 새싹이 돋아나는 5월 1일로 정해 1923년 처음으로 기념행사를 했다.
1927년부터는 5월 첫 번째 일요일로 날짜를 바꾸어 치렀다.
어린이날이 해가 갈수록 규모가 커지자 일제는 행사를 금지시켰다.
어린이들이 참가하지 못하도록 일요일에도 학교에서는 수업을 했다.
해방 뒤 첫 어린이날 기념식은 1946년
5월 5일 오전 11시부터 휘문중학교 교정에서 어린이날 전국준비위원회와 어린이날 서울시준비위원회 공동 주최로 거행됐다.
일제강점기에는 ‘어린이날’ 알리기, 어린이도 인격을 갖고 있음을 알리는 데 힘썼다.
해방 뒤에는 어린이들이 참가하여 희망이나 포부 따위를 말하고, 모범 어린이를 표창하거나 음악 · 무용 · 사생 · 백일장 같은 대회를 열었다.
해방 뒤 첫 어린이날인 1946년 첫 번째 일요일이 5일이어서 그 뒤부터는 요일에 관계없이 5월 5일을 어린이날로 정한 것이 오늘 제104회 어린이날을 맞이하였다.
댓글목록 0